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타카야마 요시히로 (문단 편집) == 프로레슬러 활동 == 타카야마 요시히로의 커리어는 [[UWF]]에서 시작됐는데, 커리어 초반에는 [[미드카더]]를 벗어나지 못하는 신세였다. 그러던 중 UWF와 [[신일본 프로레슬링]], WAR 사이에 대립하게 되자 타카야마 요시히로는 안죠 요지와 야마모토 켄이치와 함께 "골든 컵스"라는 스테이블을 조직해 태그팀 전선과 6인매치에서 활약했다. 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는 안죠 요지와 함께 [[슈퍼 스트롱 머신]]을 조롱하기 위해서 "200% 머신"이라는 태그팀을 조직해서 활동했다. WAR에서는 게도와 쟈도, 후유키 히로미치와 대립했다. UWF가 몰락한 뒤에는 킹덤이라는 단체에 들어갔지만 그 단체도 곧 망하고, 전일본 프로레슬링에 프리신분으로 UWF 시절 동료인 카키하라 마사히토와 같이 활동했다. 처음에 그는 [[카와다 토시아키]]와 대립을 갖게 되지만 대립 과정에서 자주 패배했고, 결국엔 하위권의 위상에 머물게 되었다. 그 뒤에는 UWF 시절의 외국인 용병이였던 게리 올브라이트와 [[오오모리 타카오]]와 같이 "트라이앵글 오브 파워"라는 스테이블을 구성했다. 1999년에 [[자이언트 바바]]의 사망 이후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사장이 된 [[미사와 미츠하루]]는 타카야마 요시히로와 카키하라 마사히토를 전일본의 정식 소속 프로레슬러로 입단시켰고, 그 후에는 오오모리 타카오와 같이 팀 NO FEAR로 푸쉬를 받으며 성공을 맛봤다. [[하야부사]]를 커버해 아시안 태그팀 타이틀을 차지했고, [[존 라우리나이티스|쟈니 에이스]] & 바트 건을 상대로 더블 컵까지 따냈지만 하지만 결국에는 미사와 미츠하루 & 오가와 요시나리에게 패배했다. 2000년에 [[미사와 미츠하루]]가 새로운 프로모션으로 [[프로레슬링 NOAH]]에 대한 구상을 발표했을 때 따라나섰다. UWF 시절 동료들이 PRIDE에서 성공하는 모습을 본 후에는 종합격투기에 진출하기로 결정하지만 미사와 미츠하루의 배려 덕에 프로레슬링 NOAH에서 프로레슬러로도 활동할 수 있었다. 프로레슬링 NOAH 설립 후 몇주간 초대 [[GHC 헤비웨이트 챔피언]]이 되기 위해 토너먼트에 참가해서 경쟁했으며, 결승전까지 올라갔지만 [[미사와 미츠하루]]의 모든 엘보 기술들을 받아낸 후 에메랄드 플로전을 맞고 패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성공 가도는 프로레슬링 NOAH에서 계속되어 타카오 오모리와 GHC 태그팀 타이틀을 차지했다. 2002년엔 프로레슬링 NOAH에선 좋은 경기들을 만들어내며 종국에는 [[오가와 요시나리]]를 상대로 승리한 후 GHC 헤비웨이트 타이틀을 따냈다. 하지만 한 달 후에 미사와 미츠하루에게 타이틀을 빼앗겼다. 본격적으로 MMA에 손을 대기 위해 그는 프로레슬링 NOAH를 탈단하고 FA 신분으로 전환했다. 그 후 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도 [[나가타 유지]], [[쵸노 마사히로]], [[텐잔 히로요시]] 같은 정상급 스타들과 경쟁하면서 [[IWGP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을 차지했다. 2003년과 2004년에는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G1 클라이맥스에도 참가했다. 2004년 중순에는 판크라스 미션 소속 프로레슬러인 [[스즈키 미노루]]와 연합하여 [[IWGP 태그팀 챔피언십]]을 차지했다. 뇌경색으로 쓰러져 재기불능이란 판정을 받았지만 2006년 6월, 프로레슬링 NOAH에서는 7월 16일 무도관에서의 흥행에 타카야마 요시히로가 복귀해서 [[코바시 켄타]]와 함께 미사와 미츠하루 & 아키야마 준[* [[익스플로이더]]의 창시자이자 전일본 프로레슬링 5강 중 한 명이다.]을 상대한다는 소식을 발표했다. 이후에 코바시 켄타의 암 제거 수술 일정으로 인해 사사키 켄스케와 팀을 맺는 것으로 대진이 변경된 채 복귀했다. 그리고 코바시 켄타가 암을 극복하고 돌아왔을 때에도 같은 팀으로 미사와 미츠하루와 아키야마 준 태그를 상대했다. 복귀 후 타카야마 요시히로는 옛 UWF 동료인 [[사노 나오키|사노 타쿠마]]와 팀을 맺고, 코바시 켄타의 신장 수술로 인해 공백이 된 GHC 태그 타이틀을 노리게 됐는데, 챔피언 결정 토너먼트 결승전에서 무하마드 요네와 모리시마 타케시의 태그에게 패배했다. 같은 해 12월 27일에는 ZERO-1에 모습을 드러내 전 파트너인 오오모리 타카오를 공격하고 다음 흥행에 다시 온다고 약속하고 갔다(...). 타카야마 요시히로는 2009년 3월 14일에 [[무토 케이지|그레이트 무타]]를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PPV인 프로레슬링 러브에서 패배시키고 [[삼관 헤비급 챔피언십]]을 차지했는데, 이로서 사사키 켄스케에 이어 2번째로 일본의 3대 메이저 타이틀을 모두 차지한 선수가 되었다.[* 프로레슬링 NOAH의 GHC 헤비웨이트 챔피언,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IWGP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삼관 헤비급 챔피언.] 타카야마 요시히로는 7개월 가까운 시간동안 삼관 헤비급 챔피언을 유지했고, 11월 26일에 [[코지마 사토시]]에게 타이틀을 빼앗겼다. 2010년 1월 4일 도쿄 돔에서의 레슬킹덤 4에선 [[나카무라 신스케]]의 IWGP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에 도전했지만 패배했다. 타카야마 요시히로는 사노 타구마와 함께 프로레슬링 NOAH의 "글로벌 태그 리그" 토너먼트에서 연승 가도를 이어갔지만, GHC 태그팀 챔피언인 무하마드 요네와 리키오 타케시를 이기는 데에는 실패했다. 2010년 3월 28일에서 5월 2일 사이에는 프로레슬링 NOAH 사상 최초의 글로벌 리그 토너먼트에 참가해 결국엔 우승을 거뒀다. 결승전에서 아키야마 준을 만나 승리를 거두었으며, 총점 7점으로 우승했다. 그리고 타카야마 요시히로는 우승자로서 스기우라 타카시의 GHC 헤비웨이트 타이틀에 도전할수 있는 권리를 얻어 7월 10일에 타이틀전을 가졌으나 패배했다. 같은 해 9월 18일에는 사노 타쿠마와 함께 [[사이토 아키토시]]와 빈슨 스미스의 태그팀 타이틀마저 따냈고, 2011년 1월 4일 도쿄돔에서 열린 레슬킹덤 5에선 스기우라 타카시와 팀을 맺어 [[오카다 카즈치카]]와 [[고토 히로오키]]의 태그를 상대로 승리를 거뒀다. 타카야마 요시히로와 사노 타쿠마의 태그는 타이틀을 신일본 소속 [[맷 블룸|자이언트 버나드]] & [[칼 앤더슨]]에게 6월 18일에 잃었다. 2011년 후반부에 타카야마 요시히로는 스즈키 미노루에게 가세해 [[스즈키군]]의 멤버로서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모습을 드러냈으며, 그대로 2012년 1월 4일 도쿄돔에서 열린 레슬킹덤 6에서 [[마카베 토우기]]를 상대했지만 패배했다. 3월 18일에는 같은 스즈키군 멤버인 랜스 아처와 함께 텐잔 히로요시와 코지마 사토시 태그의 IWGP 태그팀 타이틀에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2015년에 스즈키 미노루가 스즈키군을 이끌고 프로레슬링 NOAH를 침공할 때 스즈키군이 아니라 NOAH의 편에 서서 맞서 싸웠다. 2017년 5월 4일, [[DDT 프로레슬링]]의 흥행에서 경기 중 선셋 플립을 시전할 때 머리부터 바닥에 떨어지면서 전신마비 증상을 보였다. 진단 결과 경추 손상 및 변형성 경추증으로, [[남색 디노]]와의 KO-D 태그 타이틀을 반납하고 입원했다. 목 아래쪽에는 전혀 감각이 없는 상태에다가 경제적인 어려움까지 겹쳤다. 이에 스즈키 미노루를 비롯한 동료와 선후배 프로레슬러들은 TAKAYAMANIA를 발족해 타카야마 요시히로를 돕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한편 PRIDE에서 그와 전설의 난타전을 펼쳤던 돈 프라이도 타카야마 요시히로를 직접 찾아가서 눈물 짓기도 하고, 안아주기까지 하며 그를 격려해 주었다. 다행히 동료 프로레슬러들과 각종 모금 등을 통해 치료비가 잘 마련되었고, 이후 상태가 호전되어 재활 치료를 꾸준히 받고 있다. 타카야마는 걸어서 링을 내려가 은퇴하는 것이 마지막 목표라고 밝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